
충무로의 큰 별, 영면에 들다
2026년 1월 5일 오전 9시. 한국 영화계는 가장 밝게 빛나던 별 하나를 하늘로 보냈습니다.
‘국민배우’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던 안성기 배우님이 향년 74세의 나이로 영면하셨습니다. 다섯 살부터 시작된 69년의 연기 인생, 170여 편에 달하는 출연작,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인품으로 한 시대를 살아온 분이셨기에, 그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갑작스러운 별세, 마지막 순간
안성기 배우님은 지난 2019년 혈액암(비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으며 많은 이들을 안도하게 했지만, 이후 암이 재발해 꾸준히 투병 생활을 이어오셨습니다.
2023년까지만 해도 각종 영화제와 행사에 참석하며 “아직 몸상태가 모자란다. 기다려달라”고 말씀하시며 재기의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불편한 몸이었음에도 후배 박중훈의 부축을 받으며 춘천국제영화제 뒤풀이에 참석해 영화인들을 격려하시는 모습은, 평생을 한국 영화와 함께 하신 그분의 마지막 헌신이었습니다.
2025년 12월 30일 오후 4시경, 자택에서 음식물을 섭취하던 중 기도 폐쇄로 쓰러지셨습니다.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순천향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미국에 있던 큰아들 안다빈 씨가 급히 귀국해 가족들이 병상을 지켰지만, 입원 6일 만에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본인의 75세 생일이기도 한 1월 5일, 마치 마지막 인사를 하듯 떠나신 것입니다.
슬픔에 잠긴 빈소,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는 장례
빈소 풍경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습니다. 상주에는 아내 오소영 씨와 두 아들 안다빈·안필립 씨가 이름을 올렸고, 놀랍게도 생전 같은 소속사(아티스트컴퍼니)에서 함께했던 후배 이정재와 정우성이 상주를 자처하며 직접 조문객을 맞이했습니다.
빈소 양쪽 벽면은 이재명 대통령,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조용필, 이수만, 전도연, 김상경 등의 이름이 적힌 근조화환으로 가득 찼습니다. 오후만 되면 화환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끝없이 이어진 조문 행렬
비보가 전해지자마자 빈소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들
- 박상원 배우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하늘나라에서도 연기를 하고 계실 것”
- 이정재 배우: 새벽부터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 맞이
- 조용필 가수 (60년 지기): 투어 중임에도 한달음에 달려와 “성기야 또 만나자. 잘 가라”
눈물로 작별 인사를 한 이들
- 박중훈: “30년 함께 영화 찍은 것이 행운. 이 슬픈 마음 표현할 길 없다” (눈물)
- 신현준: 조문 후 눈물을 흘리며 장례식장을 나섬
- 김동현: “계속 눈물이 난다. 동료로서 너무 슬프다”
- 태진아, 최수종, 진선규, 정재영, 송승헌, 권상우, 박경림, 김규리
- 임권택 감독, 강우석 감독, 이준익 감독, 배창호 감독
정계 인사들도
- 이재명 대통령: “연기는 곧 삶이었고, 그 삶은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안성기 선생님 자체가 한국 영화사.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는 말씀처럼 K-영화의 밑거름이 되신 분”
-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국민들한테 베푼 사랑만큼 하늘나라에서 큰 사랑 받으시길”
-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접 빈소를 찾아 금관문화훈장 전달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는 장례
장례는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사)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진행됩니다.
- 명예장례위원장: 신영균
- 공동장례위원장: 배창호 감독, 이갑성(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신언식(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 양윤호(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 운구: 이정재, 정우성
- 추도사: 정우성, 배창호 감독
- 발인: 2026년 1월 9일(목) 오전 6시
- 영결식: 오전 7시 (천주교 추모 미사 후)
- 장지: 양평 별그리다
일반인 추모 공간도 마련됐습니다. 1월 6일(월) 오전 10시부터 8일(수) 오후 6시까지 서울시 중구 서울영화센터에서 일반 시민들도 조문할 수 있습니다.
한국 영화사를 수놓은 출연작들
아역 시절 (1957-1968)
안성기 배우님은 1952년 1월 1일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다섯 살이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하셨습니다.
- ’10대의 반항’ (1959): 소매치기 역으로 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 소년연기상,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 수상
- ‘하녀’ (1960): 김기영 감독의 명작
- 70여 편의 아역 작품 출연
중학교 3학년 때 ‘젊은 느티나무’(1968)를 끝으로 10년간 활동을 멈추고 학업에 전념하셨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복무(학군 12기, 예비역 중위 전역)한 후, 1970년대 후반 다시 영화계로 복귀하셨습니다.
성인 배우로의 화려한 부활 (1980년대)
“아역 출신은 성인 배우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완전히 깨뜨리셨습니다.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장호 감독)
- ‘만다라’ (1981, 임권택 감독) – 수행자 역
- ‘고래사냥’ (1984, 배창호 감독) – 왕초 민우 역
- ‘태백산맥’ (1994) – 지리산 빨치산 대장 역
- ‘기쁜 우리 젊은 날’ (1987, 배창호 감독)
- ‘칠수와 만수’ (1988, 박광수 감독)
한국 영화 부흥기를 이끈 대표작들 (1990-2000년대)
- ‘투캅스’ (1993) – 조 형사 역 (박중훈과 명콤비)
- ‘영원한 제국’ (1995) – 역대급 정조 역
- ‘남자는 괴로워’ (1995, 이명세 감독)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 이명세 감독) – 냉혹한 보스 장성민 역
- ‘실미도’ (2003) – 최재헌 준위 역
- ‘화려한 휴가’ (2007) – 5·18 광주민주화운동
- ‘라디오 스타’ (2006) – 매니저 박민수 역 (박중훈과 재회)
말년까지 이어진 활동
- ‘한산: 용의 출현’ (2022)
- ‘노량: 죽음의 바다’ (2023)
비중이 크지 않아도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분위기를 바꾸는 배우였습니다.
총 출연작: 약 170-180편 (한국영상자료원 집계)
수상: 대종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3대 영화제 남우주연상 다수 수상
잊을 수 없는 미담들
안성기 배우님은 연기력만큼이나 인품으로도 존경받으셨습니다. “인간으로서의 흑역사는 없는데 배우로서의 흑역사만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괴작도 거절하지 못할 만큼 한국 영화를 사랑하셨습니다.
1. 한국 영화만을 위해 TV 드라마 거절
성인 배우로 복귀한 시절, 한국 영화는 컬러 TV 보급으로 긴 침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많은 배우들이 TV 탤런트로 자리를 옮겼지만, 안성기 배우님은 “자신만은 한국 영화를 위해 TV 드라마 출연을 자제하겠다”고 다짐하시고 평생 영화만을 고집하셨습니다.
2. 촬영장의 따뜻한 배려
배우 윤경호: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고생하는 것 같으면 직접 자리를 권하거나 난롯가로 불러 챙겨주셨다”
배우 탕웨이의 일화: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기자 대기실에 취재진이 몰리자 탕웨이가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직접 상황을 정리해 보호했다
3. 신인 배우들에 대한 존중
배우 김상경: “신인 시절 모두가 무시할 때 안성기 선배님만 인사를 받아주셨다”
배우 박철민: 단역 시절 안성기가 직접 나서서 자신을 배려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전했다
4. 단역 배우를 위로한 이야기
한 영화 촬영장에서 무명 단역 배우가 자꾸 실수를 하자 감독이 욕을 섞어가며 모욕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때 안성기 배우님이 직접 나서서 상황을 무마시키고, 그 배우를 따로 데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신경쓰지 마라. 당신은 틀림없이 할 수 있다는 걸 믿어라.”
그 배우는 나중에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며 영화계 미담으로 전했습니다.
5. 신현준과의 일화
신현준은 안성기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보고 배우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태백산맥’ 촬영 당시 같은 숙소 같은 방을 쓸 때 신현준이 이 사실을 털어놨는데, 안성기는 눈도 안 마주치며 “응~ 그런 애들 많아~”라고 겸손하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신현준은 안성기의 행동 하나하나를 수첩에 기록했고, 안성기는 이를 보고 놀랐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6. 유니세프 평생 봉사
1980년대부터 유니세프 각종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셨습니다.
- 1991년: 유니세프 홍보 대사 임명
- 1992년 12월: 유니세프한국사무소 특별대표
- 1993년 5월: 친선대사 임명
수십 년간 전 세계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7. 조용필과의 60년 우정
경동중학교 시절 짝꿍이었던 조용필과 60년간 우정을 이어오셨습니다. 조용필은 빈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정을 보니 어릴 적 학교 끝나고 같이 다니던 옛 생각이 많이 났다. 영화계의 별이 하나 떨어진 것 같다. 성기야 또 만나자. 잘 가라.”
8. 병중에도 영화계를 위해
혈액암 재발로 거동이 불편했던 2023년 말까지도 각종 영화제와 행사에 참석하며 후배들을 격려하셨습니다. 박중훈의 부축을 받으며 행사장을 찾으신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추모의 물결
동료 배우들의 추모
박중훈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배님. 한 사람으로서도 참 존경하는 선배님이 떠나시게 돼서 많이 슬프다. 30년 동안 선배님과 같이 영화를 찍었다는 것도 행운이지만, 그런 인격자분과 함께하며 좋은 영향을 받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선배님이 동료 후배들에게 주신 사랑 잊지 않고 잘 간직하겠다.”
조용필
“완쾌됐다고 ‘용필아 나 다 나았어’라고 했는데, 이번에 또 입원했다고 해서 심각하구나 싶었다. 너무 아쉬움 갖지 말고, 위에 가서라도 남은 연기 생활할 수 있었으면 한다.”
박상원
“안성기 선배님이 걸어온 길 자체가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다.”
SNS에 올라온 추모
- 이영애: 선배님의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 김혜수: 영원한 국민배우, 존경하는 선배님
- 이동진 평론가: 한국 영화의 이정표였던 분
정부와 정치권
이재명 대통령
“대한민국 영화사와 문화예술 전반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안성기 선생님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전한다. 선생님께 연기는 곧 삶이었고, 그 삶은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기쁨, 그리고 성찰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영화를 꿈으로, 연기를 인생으로 살아왔다’라는 말씀처럼 선생님께 연기는 곧 삶이었다. ‘관객과 시청자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라는 소망처럼 ‘믿고 보는 배우’로,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 배우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69년의 연기 인생 동안 17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았던 선생님의 뜨거운 열정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
정부: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 추서
영원한 국민배우, 하늘의 별이 되다
필모그래피와 사생활 모두에서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수많은 별이 떴다 질 때 70년 간 영화계를 지키며 한국영화의 아이콘이자 페르소나로 불렸습니다. 한국영화가 변화를 맞이하는 길목마다 그가 있었기에 모두가 그를 한국영화 이정표로 보고 따랐습니다. 그 오랜 세월 실력과 인성 모두 한결 같아서 동료 선후배 영화인 누구 하나 그를 우러러 보지 않은 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떤 관객도 그를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안성기 배우님이 지켜온 원칙이 있습니다:
- 좌우 진영 논리에 편협한 영화는 출연하지 않는다
- 성적인 수위가 지나치게 높은 영화는 멀리한다
- 가능하면 인간주의를 지향하는 작품을 추구한다
그래서 악역을 맡으셔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고, 킬러를 연기하셔도 “옆집에 사는 점잖은 킬러” 같은 느낌을 주셨습니다.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 –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하신 말씀
이 말씀처럼 안성기 배우님은 평생 한국 영화와 동료들을 위해 빛을 반사해주셨습니다. 이제 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 모두를 비춰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인사
2026년 1월 5일.
배우 안성기의 인생 여정은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숱하게 남긴 미담과 솔선수범의 모습,
170편이 넘는 작품 속 그 얼굴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한국 영화가 가장 영화다웠던 시절을 버텨낸 배우로.
수많은 영화와 수많은 얼굴을 통해.
작품 속에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안성기 배우님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많은 분들의 애도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조문 안내
빈소: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
일반인 추모 공간: 서울영화센터 (서울시 중구)
- 기간: 1월 6일(월) 10:00 ~ 1월 8일(수) 18:00
발인: 1월 9일(목) 오전 6시
영결식: 1월 9일(목) 오전 7시
장지: 양평 별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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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시청자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
“영화를 꿈으로, 연기를 인생으로 살아왔다”
- 안성기
하늘의 별이 되신 안성기 배우님.
그곳에서도 평안하시기를,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